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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라

봄님들의 공부

우리가 '나'라고 할때,

그 '나'는 어떤 말에서 연유가 되었을까요?


~~하나.


하나, 그 한아, 한나, 이래가지고 하나가 됐는데,

그 한이란 크다는 뜻이지,

대아(大我)란 뜻이 이미 내포된거지.


나라고 하면 우리가 보통 몸이나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데

그 하나라고 할때는 아니지.

그런데 현재 상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에는 하나의 나로 살고있는게 아니라,

'몸따로'  '마음따로'  두개의 나로 살고있는거지.

'두개의 나'가 '하나의 나'가 되지 않고서는 나를 못깨닫는거지,

나가 누군지 모르는거지.


'두개의 나'라고 하면 몸이 움직일때 마음이 같이 가는것이 아니고

몸은 움직이면서 마음은 딴데 딴전을 피워버려, 다른 생각을 한다말이지.

그러니 몸따로 마음따로다, 심신일여(心身一如)가 아니고 각각놀아, 분열되어 있다,


정신의학에서 정신분열이란 말이 모든 병에 포괄하는 말이지.

사실은 정신이 분열되었다기 보다는 몸과 마음이 분열되었기 때문에 합쳐가지고 정신이 분열되었다고 하지,

사실은 정신 자체는 분열될수가 없는거지.


우리가 중생이라고 하는것은 몸따로 마음따로 사는걸 중생이라 말할수 있지.

동하거나 정할때 마음이 같이 함께하면 하나가 되거든,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에 대해서 무의식이잖아,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말이야.


그렇게된 까닭은 어디 있을까요?

마음이 몸에 대해서 어떻게?

마음이 몸을 움직일라카는거,

마음이 몸을 움직일라고 하다보니 몸을 비추어보질 못해,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자각을 하지 못해.

그러니까 몸을 움직이는 거는 생각을 동원해가지고 일일이 복잡한 행동을 하는게 아니거든, 실제로 우리가 보면.

저절로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동작을 하잖아, 잉?

그걸로 봤을때는 생각이 몸을 끄는게 아니라, 마음이 몸을 끄는게 아니라 이거지.

의지를 동원해서 가끔씩 할수는 있지만 전반적인것을 다 카바하는건 아니라.

마음이 몸을 이끌어가지는 못한다,

불가능한건 아니지만, 전체로 봤을 때는.


그때 우리가 몸을 끄는것은 무엇이 끄는가 라고 했을때, 이름을 붙여가지고 정신이 끈다,

공연히 마음이란 놈이 남의 일을 맡아가지고 할라고 하다보니까, 되지도 않고 고생만 죽도록하고,

몸을 움직일때마다, 어떻게 가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얘기하지, 이런 근심 걱정으로 계속...


그러니 몸을 끌고 다니는 것은 정신이다라는걸 알았으면 자기 할일은 뭐요?

몸의 동정 동태를 비추어보고 지켜보고 알아차리고 주시하고  자각하는것,

이런 얘기를 여러번 하다보니까, 글로 써놓으니까, 참 알아듣기가 어렵고, 알아듣지 못하니까 행하기가 어려워.

글이란게 한계가 있다구.

주시한다 관찰한다 구경한다, 별별 말을 다 써도 못 알아들어,

어떻게 보고 알아차리냐, 이런다구.

그것만 알면 다시는 그 질문이 안 일어날텐데,

그러니 몸 가는데 마음이 함께가게 되면 몸의 동정에 대해 저절로 환해질것 아니야?

그랬을때가 심신일여, 심신이 하나가 되었다,

하나가 되어가지고 보면 그게 '나'잖아,

그게 '나'거든.


그렇게되면 마음이란 놈이 몸을 돌보고 살피고,

돌본다는 말이 더 상세하지,

거기다가 또 감지한다는 말도 해보고, 구경한다 말도 해보고,

오만 말을 다 써도, 그게 글을 통해가지고는 행동으로 가기가 대단히 어렵다말이야.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게됐을때,

"너가 이렇게 이 손 들었다 내리는 동작을 알아차려봐", 하면

"어, 아무것도 아니네",

"목을 돌리면서 목을 돌리는줄 알아차리는 거야 이게",

"어, 아무것도 아니네",

말로하게되면 굉장히 쉬운데, 글로 쓰게되면 아주 굉장히 어려워.

별별 말을 다 동원해도 그게 잘 안먹어들어가.


그래 마음이 몸을 끌고 다닐려고 할때는 근심걱정 오만 잡념이 들고 하다가,

몸의 동태를 늘 안놓치고 볼라그러다 보니까, 힘이 무지하게 들어가거든.

힘이 무지하게 들어가다보니까 생각이 안일어나는거지.

마음이 몸을 늘 보게되면 생각이 안 일어나,

생각이 안일어나면 뭐라고 그러지?

무심(無心)이라, 무심을 거기서 털커덕 아는거라.

생각이 안일어났을때가 무심인데,

생각이 안일어났다는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됐을때 무심이 되는거지.

그러니까 무심이라는 글자를 통해서는 아무리 연구해도 알수가 없는거아,

이걸까 저걸까 해봐도... 허허허,

생각으로는 아무리 해봐야 감이 안잡혀.


그러면 마음이 어떻게 무심이 되느냐?

마음이 몸을 늘 돌보고 보고 살피다가 보니까, 에너지를 거기다 전적으로 투입하다 보니까,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어,

여지가 없어져버리니까 저절로 무심이라,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저절로 무심이 되더라 이거지.

이론이 아니라 사실로.


그러니까 하나가 난데, 나란 무어냐 하면, 무심이다 이렇게 말할수가 있는거지.

이 무심이란 말도 자기가 몸소 겪어봐야 확연한,

이 무심이란게 어떤걸 무심이라고 하지?, 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이런땐 이런 생각이 났다가 또 저런땐 저런 생각이 났다가, 무심이란게 어떤거지? 하는 생각이 붙어있거든.

그러니 마음으로서는 무심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해.

둘이 하나가 되어가지고 봐야 그것이 무심이야.

왜 무심이 되는가 그 까닭을 아셨지?

돌보고 보살피다 보니까 겨를이 없어.

거기에 에너지가 전적으로 투입되고 바쁘니까, 딴 잡념이 일어날 여가가 없으니까,

저절로 무심이 되지.

그러니까, 이게 뭘까?라고 하게될때는 마음이 몸을 떠나가지고 나오는 생각이라,

어떤 형이상학적 생각도 다 그래.

그러니까 철학을 통해서는 깨침을 못갖는거지.

아무리 기가막히게 분석하고 해봐야 깨달음으로서는 오지 않는다,

깨달음이라는, 다시 말하면 무심의 맛을 못보는거지.

무심이 어떤 것이란걸 확연히 깨닫고 맛을 못보는거지.

무심을 못깨달으니 내가 누군지를 평생 모르는거지.

철학자들이 다 도인은 아니거든.

깊이 파 제끼고 연구하고 캐놔봐야 그것도 유심(有心)에서 유심으로 한거지.

무심은 거기 구경할 여가가 없어.


그럴때 마음이 몸을 돌보고 보살핀다고 그 말로 따라가지 않고,

그 요체를 잡아가지고 실지로 행동으로 체험을 할때는 아주 그냥 바로 되어버려.

바로 된다 말이야. 그게 합일이고 합일이 되면 무심이 저절로되니까, 그 무심이 나다, 하나가 되니까.


그 이름이 무심이야.

무심이란게 따로 있지 않고. 그걸 보게되면 견성이라, 성품.

견성을 해야 진아(眞我), 진짜 나지.

진짜 나가 한 아,


명상단체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 하는데,

뭐 여행도 아니지, 잠깐 '새'지.

여행을 떠날 새도 없이 하나가 되면 직방이지.

여행을 가고 자시고 할것 없어,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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